인생사 앵글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숱한 지혜를 준다. 지나치기 일쑤이나 우연한 깨달음에 이르면 그 기쁨은 더없이 크다. 필자는 아침마다 뒷산 숲속 길을 산책한다.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흙길이고 양옆에 늘어선 덤불과 이슬에 젖은 풀줄기가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흙냄새가 물씬 난다. 동네 뒷산을 한 바퀴 돈다. 조금 빨리 걸으면 숨이 차는 오르막도 있으나 대체로 나지막하다. 뒷동산이라 함이 적정한 표현인지 모른다. 
 
이 길을 한 시간 넘게 걷는다. 산을 낀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오래된 마을이 듬성듬성 자리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북한산이 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다 동녘 해가 뜰 무렵이면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멈추지 않는다. 건강을 챙기는 운동을 하며 곁들여 사진을 찍는다. 
 
발성 연습도 한다. 주변에 있는 마을이 산 아래에 떨어져 있어 고함을 질러도 괜찮다. 고함에 놀랄지 모르는 산짐승이나 산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강사와 라디오 출연을 하기에 발성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최근엔 연극배우로 출연하게 되어 대사 연습하는 장소로 활용한다. 조용히 사색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이 드물어서 나만의 공간처럼 느낀다. 나무들과 산새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바람이 친구 된다. 여름이 아쉬운 매미가 가을을 노래하고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을 타고 후미진 풀잎 속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 발걸음 배경음악 된다. 하루아침에 서너 가지 일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요즘엔 한 가지 더 재미난 일이 더해진다. 토실토실한 밤을 줍는 재미에 빠졌다. 밤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고 더러는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밤이 제대로 익어 떨어지는 계절이다. 간밤 바람에 우두둑 떨어진 밤톨이 여기저기서 반긴다. 잡초가 우거진 밤나무 밑으로 다가가 밤을 줍는다. 밤송이 가시에 손이 찔리기도 한다. 밤 맛을 즐기려는 마음에 앞서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을을 줍는다. 손끝을 타고 가을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아침 햇살에 윤기 나는 탱글탱글한 밤톨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지나가는 바람에 ‘툭’ 하고 밤송이가 또 떨어진다. 열십자로 벌어진 가시 돋은 밤송이를 헤집고 밤톨을 꺼내기도 하고 바닥 낙엽 더미 속에 떨어진 밤도 줍는다. 청설모, 다람쥐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으나 이들을 산에서 만난 지 오래다. 깊은 산으로 옮겨갔지 싶다. 가을이 손안에 한 움큼 쥐어 쥔다. 어린 시절 고향 동네 뒷산에서 밤을 줍던 기억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이곳의 밤나무는 토종이어서 밤톨이 굵지 않으나 밤 맛은 옛 맛 그대로다. 유소년 시절에 먹던 그 맛이어서 신토불이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추억에 더욱 정겨워지는 아침이다.
 
필자는 밤을 잘 줍는다. 잘 줍기보다 잘 발견한다. 함께 밤 줍기에 나선 안사람에 비해 거의 세 배를 줍는다. 필자가 남자이고 밤을 주워 본 경험 때문이겠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시선의 집중력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떨어진 밤을 찾는 시선이 남다르다. 나이가 들어 시력이 많이 나빠졌으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사진이 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달라졌기에 그렇다. 주변에서 사진 소재를 찾으며 모든 물체를 소홀히 보지 않으려는 습관이 집중력을 키웠다. 모든 사물을 허투루 보지 않는 습관이 몸에 뱄다. 밤을 줍는 목표가 세워지면 거기에 몰입한다. 나무에서 떨어진 밤톨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낙엽 속에 묻히기도 한다. 일상적 키 높이에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밤이 시선을 달리하면 보인다. 
 
앞으로 향하던 시선을 뒤로 돌려보면 낙엽에 묻혔던 밤알의 다른 부분이 보인다. 이를 사진에서 전문 용어로 “앵글”이라 한다. 고개를 낮추고 방향을 달리해보면 보이지 않던 밤톨이 눈에 들어온다. 똑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도 함께 한 사람들의 사진이 제각각 다르듯 목적을 염두에 둔 시선에 따라 결과는 크게 차이가 날 수 있음이다. 세상 사는 이치가 앵글인지 모른다.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의 <그 꽃/ 올라갈 때 못 본 꽃 내려갈 때 보았네>의 발상도 그런 측면으로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인의 이야기는 다르나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보게 됨은 시각의 차이에서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마음에 여유를 갖고 바라보는 세상과 그 반대의 경우는 분명 다르리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이다. 한 톨의 밤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발견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 있다. 
 
피사체를 보는 시각과 방향에 따라 남다른 사진 작품을 만들어내듯 인간사도 마찬가지지 싶다. 사물이나 사건을 보는 시선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아침 산책길에 가을 주우면서 얻는 삶의 지혜 하나다. 세상사는 앵글이 아닐까.

<시니어리포터 변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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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변용도 (변사또)
지리산 청학동에서 태어난 촌놈입니다. 생애재설계 강사,수필가, 사진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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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안장익 6시간 전
동감합니다. 보는 시야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요 그래서 철학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철학을 주창 하시는 분 의견과 내 의견이 다를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모두 같을거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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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술 6시간 전
공주와 부여지역은 밤곳입니다. 올해는 나도 밤을 주워보았습니다. 가을비가 온후에는 많은밤이 떨어져 신나게 주워담았지만 나는 못보았는데 뒷사람이 큰 밤알을 줍는것을 보고 변선생님의 글을 읽어며 시선의 집중력도 한계가 있나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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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10월13일 오전 6:50
인생사는 앵글이다에 적극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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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도 10월13일 오후 8:03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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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0월12일 오후 9:48
오랫만입니다. 저는 밤을 줍다가 이제는 줍지 않는답닏ᆢ. 노점에서 한두되 밤 놓고 파시는 할머니들 보니 그 분들 용돈 벌 수 있는 밤을 내가 그 동안 주었구나 라는 샛각이 들어서입닏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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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도 10월13일 오후 8:03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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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 10월12일 오후 8:34
연극에 출연하시나봅니다. 선생님의 열정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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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도 10월13일 오후 8:03
고맙습니다. 늘 도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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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10월12일 오후 7:47
지난주 화담숲에서 워크숍 계기로 밤을 조금 주었는데 토종밤이라그런지 정말로 조그마한게 토실토실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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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도 10월13일 오후 8:04
역시 우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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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10월12일 오후 4:16
그렇군요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서 같은 사물이라도 다르게 보일수 있다는 ..... 토실토실 알밤 맛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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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도 10월13일 오후 8:04
예 그렇습니다. 세상사 보기 나름이라 했잖아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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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0월12일 오전 8:30
인생사 둥근 앵글과 같습니다. 세상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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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용도 10월13일 오후 8:05
홍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좋은 가을 즐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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