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스며든 이런저런 인연들
얼마 전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열화당 출판사에 들렀다가 대표인 이기웅 선생으로부터 몇 권의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이 선생을 인터뷰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 글이 담긴 선생의 책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건네면서 제가 마산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걸 알고 계신 이 대표는 책 가운데 한 권을 지목했습니다. 저보다 10회 선배인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하늘에 걸 조각 한 점'이라는 책입니다. 제목 아래에 '최종태 예술의 사회학'이라는 부제가 있었습니다.
 
김형국 교수는 저도 좀 압니다. 학교 선배이면서 또한 얼마 전에 낸 저의 졸저 '그곳에 마산이 있었다'의 후기를 김 교수가 써 준 인연이 있습니다. 이 선생이 지목한 김 교수의 그 책을 보고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워낙 명문장가인 데다 문화예술 분야에 박학다식한 분이었기 때문에 그런 류의 책인가 보다 했었지요. 헌데 그 책 표지를 보면서 어떤 희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조각가로 유명한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의 예술과 삶에 관한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종태, 최종태하고 몇 번 생각을 해보니 저와는 자그마한 인연이 있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려졌습니다.
 
2001년 언론재단 저술 작업을 하면서 도자기에 전 생애를 건 한 분을 취재해 쓴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도예가 이종수 선생이었습니다. 오로지 도자기를 위해 이화여대 교수를 그만두고 금산 땅 추부에서 가마를 지어 도자기를 굽고 있는 분이었지요. 추부에서 하룻밤을 머물면서 이종수 선생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선생의 얘기 속에 등장하는 분이 바로 최종태 교수였습니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막역한 사이라고 했습니다. 조각가와 도예가의 길은 일맥상통한 점이 많았기에 서로의 작품 세계를 비교해 가면서 때로는 격려를, 때로는 비판을 주고받던 사이였던 것이지요.
 
이 두 분 사이에 또 등장하는 분이 계십니다. 역시 고인이 된 '눈물의 시인' 박용래 시인입니다. 박 시인 또한 이. 최 두 선생과 같은 고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종수 선생은 먼저 세상을 뜬 박 시인을 얘기하면서 몇 차례 눈물을 보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시인이자 친구라면서 박 시인의 시 몇 구절을 읊기도 했습니다. 박 시인의 시를 읊으며 눈물짓던 선생이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김 교수가 최 교수에 관해 쓴 이 책에도 박 시인에 관한 글이 나옵니다. 어쩌면 그리도 이종수 선생이 눈물짓던 그날 밤의 모습과 흡사한 것인지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대목은 이렇습니다. "회고담에서 최종태는 (박용래) 시인의 사람됨을 한마디로 말해 주었다. '눈이 온다고 울던 박용래,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울던 박용래. 그의 시인됨을 두고 '고독하니까 보이는 경우였고, 없어진 단어를 갖고 시를 만들기도 했던 그가 촌스러운 말도 집어내면 시어가 되었다' 했다." 그렇게 눈물을 잘 짓던 박 시인은 생전에 최 교수에게 '소목(笑牧)'이라는 아호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 노상 울음을 달고 살던 사람이 친구에게는 '웃음'이 들어간 아호를 보냈다는 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인연의 기억을 되살려 이기웅 선생에게 얘기했더니, 최종태 교수와 김형국 교수와의 각별한 관계를 들려주었습니다. 김 교수는 최 교수의 사람됨과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최 교수는 현재 인사동 가나아트 홀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습니다. 이 개인전을 적극 주선하신 분이 바로 김 교수입니다. 김 교수는 가나아트 문화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지난번 문재인의 바티칸 방문 시 교황에게 전달한 성모 목각상이 바로 최 교수의 작품입니다.
 
최 교수가 모처럼의 개인전을 가지면서, 김 교수에게 주변의 압력 아닌 압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개인전에 맞추어 최 교수의 삶과 예술에 관한 글을 써보라는 것이었지요. 이 압력(?)을 받아들여 쓴 글로 묶어진 게 바로 '하늘에 걸 조각 한 점(최종태 예술의 사회학)' 이 책입니다. 이 책 한 권에 얽혀진 묘한 인연들 아닙니까. 이 책 한 권으로 저는 이종수 선생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추모의 염을 다독거리고 있습니다. 인사동 전시회가 11월 초까지 계속된다니 언제 한 번 인사동으로 나가봐야겠습니다.
 
 

<시니어리포터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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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김영철
반갑습니다. 많은 지도편달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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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조원자 11월10일 오전 9:30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이렇게 자세히 일러주신 적은 없을 듯합니다. 우연이 두번만 스쳐도 인연이 된다고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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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11월10일 오후 12:4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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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11월9일 오후 7:09
한권의 책에 인연의 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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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필 11월9일 오전 11:17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겹치네요. '하늘에 걸 시 한 편 써야 ' 삶과 아쉽지 않게 연을 놓을 내 시간에 대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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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11월9일 오전 11:19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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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11월9일 오전 11:12
因緣!!! 훌륭한 삶들이 향그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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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11월9일 오전 10:51
인연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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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1월9일 오전 8:26
책에 대한 좋은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이름있는 김형국 서울대교수님이 선배 이시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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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11월9일 오전 11:2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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