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인류 평화를 기원하다
2018년 10월 25일 목요일 이틀 동안 흐리고 비가 내렸는데 모처럼 청량한 가을 하늘에 공기까지 청량감 있게 느껴진다. 지금도 전철이 운행되고 있는 일본에서 오랜만에 전철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다. 쪽빛 하늘에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평화 그 자체였다. 그러나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보면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의 B29 폭격기가 인류 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지난날 전쟁의 참혹한 잔악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증거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원폭 돔이라 불리고 있는 히로시마 물산진열관]
 
[원폭 받기 전의 히로시마 물산진열관의 모습. 출처: 물산진열관 안내 게시판]
 
[원폭 당시의 물산진열관(원폭 돔) 원폭 현장의 모습. 출처: 물산진열관 안내 게시판]
 
[원폭 돔 서쪽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평화기념공원을 들어서면 맨 먼저 히로시마 물산진열관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민들에 의해서 원폭 돔으로 불리고 있는 히로시마 물산진열관은 체코 건축가 레트르의 설계로 1915년 4월에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으로 완공되어 특징적인 녹색 돔으로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물산진열관은 현의 특산물 전시·판매, 상공업에 관한 조사 상담 등의 업무로 하고 있었지만, 미술전이나 박람회 등 문화사업에도 이용되었다. 
 
그 후 히로시마현립 상품진열소,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으로 개칭하고 업무에 확대를 도모하였으나 전쟁의 장기화, 격화로 인해 업무가 축소되어 내무성 주고쿠 시코쿠 토목 출장소, 히로시마현 지방 목재 주식회사 등 관공서 등의 사무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의 B29 폭격기가 인류 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원폭은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의 남동쪽 약 160m 지점의 상공 약 600m에서 작렬하여 건물은 대파ᆞ, 전소되었고, 관내에 있던 전원이 즉사하였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3년이 지났건만 그 참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증거물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실존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시에 있는 히로시마 물산진열관 건물이다.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투하 당시 8만 명이 즉사했고, 원폭 피폭자로 7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도시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건만 히로시마 물산진열관 건물은 건물 자체 뼈대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눈, 비, 바람을 맞고 있다. 건축을 튼튼히 했기에 건물 뼈대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흉측스러우니 철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에 보존하기로 하여 1996년 12월 원폭 돔은 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핵무기의 참화를 전하는 역사의 증인으로서 또 핵무기의 근절과 세계 영구 평화의 소중함을 호소하는 인류 공통의 평화기념비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또 원폭 돔 주변은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가의 사적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평화기념공원 주변을 포함한 구역에 완충지대(버퍼 존)가 설정되어 원폭 돔 보호가 도모되고 있다고 한다.
 
[왼쪽 중학교 부 교장 오른쪽 김광섭 교장과 대화하는 모습]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미군은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처음 사용해 보는 원자폭탄이기에 실험해보기 위한 목적으로 날씨가 가장 맑은 지역이 히로시마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전몰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하고 계시는 중학교 부교장 선생님(우리나라의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쿄가 집중적으로 연합군의 공격을 받게 되자 군 지휘부를 여러 도시로 분산했는데 그 도시 중의 하나가 히로시마시였다고 말씀해 주셨다. 중학교 부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학생들을 인솔하여 지도하고 계시는 모습이 정말 경이로웠지만, 학생들 또한 현장학습에 임하는 자세가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고 열중하고 있었다.
 
[왼쪽 부교장 선생님의 교수학습지도안, 오른쪽 학생이 현장학습에서 기록한 공책]
 
부교장 선생님의 교수학습지도안을 자세히 보면 원래의 교수학습지도안에 다시 첨가하여 보충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말 지도 내용이 충실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 또한 공책에 기록한 내용을 보면 진지하고 주의 집중해서 현장학습 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
 
[선생님 없이 학교에서 정해준 모둠별로 현장학습하고 있는 일본 중학생들의 모습. 책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
 
[현장학습하고 있는 여중생들 현장학습 중 양해를 구하고 촬영함]
 
[현장학습 하면서 정리한 공책]
 
위 세 여학생은 중학교 1학년이라고 하는데 1학년 180명의 학생을 3명씩 모둠을 짜주고 각 모둠의 학생들은 돌아가면서 한 학생이 한 주제를 조사해서 현장에 가서 발표하면 나머지 두 학생은 발표 내용을 기록하고, 다음 장소에 가서는 다른 학생이 발표하는 방법으로 현장 모둠학습을 하고 있었다.
 
[원폭 사몰자 위령탑. 현장학습 온 여학생들이 묵념하고 있다]
 
인솔 교사 없이 학생들 스스로 원폭 사망자 위령탑 앞에서 묵념한 후 이곳에서도 현장학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장학습이 끝나고 다음 현장으로 가기 전에 모여 있는 학생들의 모습]
 
우리나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현장학습이 끝나고 다음 현장으로 가기 전에 모여 있는데 줄을 반듯이 맞추어 앉아 있는데 말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일본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일본교육의 충실한 단면을 볼 수 있었고, 그 모습들이 경이로웠다.
 
마침 우리나라에서 수학여행으로 고등학생들이 왔다. 그들은 맨몸에 핸드폰만 들고 달려 다니는 모습만 보았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육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이학]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보면 유독 종이학을 많이 게시해 놓고 있다. 평화기념공원에 종이학이 많은 이유는 원폭 이후 피폭된 지 10년 만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사키 사다코와 관련이 있다. 1945년 사다코는 2살의 나이에 원폭으로 피폭되었지만 10년간 건강하게 자랐다. 하지만 1954년 백혈병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1955년 2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히로시마 적십자 병원에 입원하였다. 회복을 바라며 종이학을 접었지만, 투병 8개월만인 1955년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사다코의 죽음을 계기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원폭 어린이 동상’이 건립되었고 전 세계 시민들이 종이학을 보내오고 있다. 그 수가 약 천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탑]
 
리포터를 하면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위한 위령탑을 발견하고 잠시 머리 숙여 원폭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 올렸다. 
 
[평화의 종(Peace Bell)]
 
우리 일행은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평화의 종(Peace Bell)을 울리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평화의 종(Peace Bell)소리가 은은히 멀리 퍼져 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진정한 평화는 이런 은은한 감동과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 사몰자를 위한 헌화단, 멀리 원폭 돔이 보인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곳곳에 평화를 기원하는 동상과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고, 자라는 학생들은 이곳에 와서 삼삼오오로 모둠을 지어 현장학습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가 충만하게 느껴지는 평화기념공원이었다. 이제 다시는 이런 전쟁의 참화가 재발하지 않도록 인류 전체가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평화기념공원 정문을 나섰다. 일천만 마리의 종이학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종이학을 접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있는 분수대]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하얀 물줄기는 세계를 향한 평화의 고동 소리가 되어 멀리멀리 울려 퍼지기를 기원했다.
                          

<시니어리포터 이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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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이호연 (afterg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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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조원자 11월10일 오전 9:39
그 부끄러웠던 기억을 지우지 않고 전쟁의 폐허를 간직하고 그 모습을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이런 점은 본받아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의 모습을 지우기를 앞서니 말입니다. 우리 한국의 원폭피해자의 위령탑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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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1월10일 오전 9:46
조원자선생님 잘 지내고계시죠?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고 많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현장학습을 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 오면 천연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공책 정이 또한 세밀하게 학 있으니 이런 학생들과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어떻게 견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일본으로 수학여행 왔는데 행드폰 하나 들고 뛰어나니기에 바쁘더라고요. 이런 후유증이 20년 안에 닥쳐올 것입니다. 그 누가 이 부작용을 책임질까요? 동행한 교장선생님들 말씀이 일본 학생들 현장학습 하는 것을 보고 소름끼친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나라의 살길은 교육입니다. 교육이 정치논리에 휘말리면 불행한 일이 불원간에 닦쳐옵니다. 교육에 발을 담근 저 역시 걱정이 태산입니다. 무거운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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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11월9일 오후 7:59
오랜만에 일본어좀 쓰셨겠네요. "와따구시와 고쯔 센세이 데스요...?"그곳에 출잘가본지도 어언 40년가깝게된것 같군요. 좋은 체험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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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1월9일 오후 9:41
네 이송식 선생님! 일본은 전쟁 폐허의 모습을 간직하고 이 모습을 학생들이 진지하게 현장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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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라 11월9일 오후 7:30
히로시마공원평화기념공원 예모습을 볼수있게 만들고 학생들에게 학습시키는 그런것을 보면 우리는 다 없애고 우리학생들에게 말로만 전하니 실감을 하지 못하니 그런것은 아쉽네요 한국의 원폭피해자 위령탑도 있으니.......
잘보고갑니다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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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1월9일 오후 9:39
김이라 친구님! 감사합니다. 일본의 교육열의는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조용히 말 없이 자기주도적으로 열심히 공책 정리하면서 현장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교육을 생각해 보면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이니 이걸 어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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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석 11월9일 오전 11:21
1945, 8.6,08.15! 의미와 peace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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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1월9일 오후 4:11
네 이제는 Peace Bell을 운려야만 하는 시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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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11월9일 오전 11:07
아픈일이죠 이런일이 발생된 원인도 전시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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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1월9일 오후 4:10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오사카성 천수각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현진ㅇ학습에서 보여주는 진지함과 부교장선생님께서 충분한 교수학습지도안을 작성하셔서 현장에서 지도하시는 모습과 이를 듣는 학삭ㅇ들어 진지한 모습은 경이로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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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 11월9일 오전 9:16
2차세계대전의 참혹상과 역사적인 현장을 살펴보면서 자세하게 사진과 함께 설명을 잘 해주셨습니다.
일본학생들의 진지한모습들도 배울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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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1월9일 오후 4:08
네 이영호선생님 반갑습니다. 일본학생들은 자기주도적으로 현장학습을 하고 있고 노트정리 또한 진지하게 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오ᆢ 360도 다른면이었습니다. 이 결과가 20~30년 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교육의 반성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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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영 11월9일 오전 8:31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네요. 사진으로나마 잘 보았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동산들도 많이 있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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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11월9일 오후 4:06
네 정말 힐링할 수 있는 울창한 숲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진지하게 현장학습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기념비오ᆢ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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