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모델
 
 
거의 매주 시부모님과 외식을 즐기다 보니 엥겔지수만 보면 극빈층 수준이다. 밥이나 겨우 해 먹는 나로서는 주말이랍시고 특별한 음식이 당기면 당연히 외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부모님이랑 같이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시누이들이 그런 나를 칭찬하는데 만약 시부모님이 맨날 외식이나 하는 아들 부부를 못마땅히 여긴다면?
 
살림도 요리도 제대로 못 하는 며느리인 걸 흉잡히고 싶지 않아 시부모님 몰래 다녔을 게 분명하다. 내가 뜬금없는 효부 코스프레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시부모님의 공이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아! 좋다, 아! 맛있다!’ 감탄사를 연발하시니 함께 다니는 것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돈이 얼마가 들든 별 상관 않고 그 순간을 누릴 줄 아는 시부모님인 것이다.
 
나의 설명에 시누이들이 강하게 공감을 한다. 둘째 시누이의 시어머니는 어디를 모시고 가도 마땅찮아 하시니 애써 잘해드려도 개운하지가 않다며 내 말에 적극 맞장구를 친다. 평소에는 곱고 세련된 외모만큼이나 언행도 반듯하신 분인데 식당에만 가면 “비싼 돈 주고 이런 데를 뭐하러 오냐”며 툴툴거려서 맥 빠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시골의 전원주택에 혼자 사시는데 집을 워낙 예쁘고 깔끔하게 꾸미고 사는지라 웬만한 곳은 눈에 차지 않아서인 듯. 애들 어릴 때 나도 한번 사돈댁에 초대받아 가봤는데 온갖 꽃이 피어 있는 정원에 유럽풍의 식탁과 가구, 고급스러운 집기에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내 주변에서는 그렇게 우아한 노년을 본 적이 없어서였다.
 
테이블 세팅까지 완벽한 일류 레스토랑 분위기의 집에 살다 보니 어딘들 마음에 들겠는가. 역시 공주과이긴 하지만 소박한 집에 사는 덕분에 밖에만 나가면 좋다고 환호하는 우리 시부모님하고는 다른 반응인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하는 게 차츰 불편해지더라는 시누이.
 
나만 해도 시부모님이 모든 걸 집안에서 해결하려는 성향이었다면 며느리의 노동력이 요구될 테니 시댁 나들이가 즐거울 리 만무다. 돈 쓰는 거 별로 개의치 않고 산으로 들로 함께 다니는 거 흡족해하는 시부모님이라 내가 착한 며느리 소리도 듣는 것이다.
 
우리 엄마도 바깥나들이는 즐겨 했는데 막상 식당에서는 자기 몫의 음식 시키는 걸 벌벌 떨어서 좋은 기분을 망치곤 했었다. 딸 돈 쓰는 게 아까워서 당신은 배부르다고 마구 화를 내면서까지 음식 주문을 거부했던 울 엄마. 그 상황에서 ‘내 돈을 이리 아껴주니 고마운 울 엄마’ 하며 감격할 딸은 없을 것이다. 늘 그런 식으로 외식하는 기쁨에 초를 쳤던 울 엄마에 비해 돈에 연연하지 않는 시부모님이 얼마나 현명해 보였는지 모른다. 
 
어느 집을 봐도 울 엄마처럼 불쌍한 노인은 없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사돈들에 비하면 지지리 복도 없이 궁상으로 살다 간 엄마는 나에게 한으로 남아있다. 난 그렇게 늙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딸들에게 한으로 남는 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식들의 호의와 대접을 누릴 줄 아는 노년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원한 나의 롤 모델은 시어머님이다.
 

<시니어리포터 장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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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장명신 (춘심이 혹은 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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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송식 2018년11월21일
시부모님을 지극정성스럽게 묏는 장선생님한테는 분명히 큰복이 찾아올것입니다.남들은 '시'자만 들어도 머리를 흔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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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018년11월30일
시부모님이 갑질을 안하고 편하게 대해주시니까 함께 있어도 전혀 스트레스가 없어요. 못된 시부모님이라면 저도 이렇질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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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2018년11월21일
자식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도 부모에 몫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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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018년11월30일
그렇고말고요. 자식들 효도할 기회를 줘서 나중에 후회할 일 없게 만드는 것도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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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길 2018년11월21일
시어머님을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며느리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참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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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신 2018년11월30일
그러니까 울 어머님이 복이 많으신 거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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