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처음에 제목을 잘못 읽었다. '인간은 얼굴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로 읽었는데 다시 보니 인간이 얼굴을 진화시킨 게 아니라 얼굴이 인간을 진화시킨 게 아닌가. 얼른 납득이 가질 않았다. 사실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둔 지 좀 되었는데 두께가 만만치 않아 깊은 겨울에나 읽으려고 미뤄두었던 책이다. 그런데 제목을 잘못 읽고 보니 내용이 궁금해졌다. 어쩌겠는가.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깊은 겨울까지 기다릴 것 없이 읽을 수밖에. 
 
인간에게는 수만 가지 표정이 있다. 따라서 인간 진화의 역사는 얼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얼굴에 대한 설명이 범상치 않다. "인간의 얼굴은 특이하다. 일반적인 포유류의 기준에서 인간의 이목구비는 이례적이고, 전문화돼 있으며, 어떻게 보면 기이하기까지 하다"고 수많은 동물의 머리와 얼굴 구조를 연구해온 21세기 최고 권위자 도널드 엔로 박사는 말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얼굴을 판단기준으로 삼다 보니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인간의 얼굴은 가장 특이하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마운틴 고릴라-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에렉투스-네안데르탈렌시스-고대 이집트 미라의 주검 얼굴 위에 놓아둔 여인의 초상화]
 
분류학자들은 동물을 약 서른 개의 주요 집단으로 분류하는데 대다수의 종은 얼굴이 없다. 갑각류와 곤충류를 포함하는 절지동물과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만 얼굴이 있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얼굴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감각본부로서의 기능에 더해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인간에게 얼굴은 결정적이다.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애덤 윌킨스는 그의 독보적인 저서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에서 5억 년 전 생존했던 작은 무악어류(턱이 없는 어류)인 최초 척추동물부터 유악어류, 포유류, 영장류,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역사를 따라가며, 인간의 얼굴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는지 그 진화의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인간 진화의 흔적을 얼굴에서 찾는 이유는 그 특이한 형태뿐만 아니라 두뇌의 진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얼굴과 두뇌는 공진화했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수만 가지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읽어내는 일은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들 사이에 사회성이 커질수록 얼굴은 더 진화했고, 진화한 얼굴은 인간이 더 복잡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우리의 얼굴과 같은 특성들은 5,500만 년 전에서 5,000만 년 전 사이에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중요한 사건을 통해 인간의 얼굴은 수차례 크게 바뀌는데, 유인원의 얼굴에서 진정한 인간의 얼굴로 바뀐 건 최근 200만 년 사이에 발생했다. 이 직전까지 인간의 얼굴은 털로 덮여 있고 주둥이를 이용해 먹이를 붙잡고 이마가 거의 또는 아예 없으며 눈이 측면에 위치한 표준적인 포유류형 얼굴이었다고 한다.
 
무제-1 복사.jpg
 
이런 형태에서 털과 입(주둥이)가 사라지고 이마가 생기고 큰 두뇌와 함께 두 눈의 간격이 좁아지고 전방을 향하는 눈을 가진 얼굴로 바뀐 게 이즈음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는 생존과 진화에 비교적 우호적인 환경으로 바뀌면서 생겨났다고 본다. 즉, 거대한 초식 공룡이라는 특정 위협이 사라지면서 더 큰 신체의 크기, 가까운 것을 더 잘 보고 얼굴을 마주 대하는 상황 등에 유리한 눈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얼굴의 구조에 영향을 준 주요인은 먹이와 영양이지만 영장류의 진화를 이끈 또 다른 압력은 사회성이라고 한다. 영장류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무리의 생존 가능성을 끌어올려서 구성원들에게 간접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얼굴 털이 사라진 건 표정을 더 쉽게 읽기 위해서다. 표현능력이 사회적 결속에 기여하고 따라서 이런 속성은 사교적인 개체들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선택되고 확산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 근육의 발달도 이와 관련이 있다. 얼굴 근육은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사교적인 영장류에서 발달했는데 인간의 얼굴 근육 수는 21개에 달한다. 근육을 통해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얼굴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은 두뇌의 특정 부위와 관련이 있다. 인간들 사이에서 사회성이 커질수록 얼굴은 더 진화하고 이에 따라 두뇌는 더 발달하는 진화의 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얼굴의 진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자신과 타인의 얼굴을 의식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성형이 일반화되고 있지만, 이는 직접적인 진화적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진화적 관점에서 얼굴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세계화다. 점점 더 많은 민족이 섞이면서 미래 인간의 얼굴이 달라지리란 전망이다.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종차별, '잡종'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게 된다.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의 아프리카 기원설과 아시아인에서 발견된 고인류의 흔적 등 기원에 관한 최신 연구까지 담아낸 얼굴을 중심으로 5억 년 진화의 과정을 그려낸 색다른 분야의 책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게 한다. 
 
 
포커페이스(poker face)란 말이 있다. 카드 게임에서 상대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짐짓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슬픔, 기대와 절망, 사랑과 혐오 같은 감정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눈살을 찌푸린다'라거나 '입이 귀에 걸렸다'는 표현은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직관적으로 은유한다. 이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묘사이기도 하다. 
 
사람의 표정을 만드는 건 수많은 안면근육, 그중에서도 특히 눈과 입 주위에 집중된 근육들이다.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엷은 미소, 실눈을 뜨고 미묘하게 찡그린 이마, 앙다문 입술은 각기 분명한 의미가 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애덤 윌킨스의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는 '얼굴 만들기: 인간 얼굴의 진화론적 기원'이라는 원제 그대로 얼굴의 생물학적 기원과 사회적 의미를 밝혔다.
 
오늘날 학계에서 진화론만큼 '통섭'에 걸맞은 학문도 드물다. 인접 과학뿐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에까지 응용된다. 그런데 동물 얼굴에 대한 심층연구는 진화론에서도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 있었다. 저자가 지난해 이 책을 내기 전까지 "얼굴의 진화를 다룬 가장 최근 책이 1929년 윌리엄 그레고리(미국 뉴욕자연사박물관 과학자)가 집필한 저서"라고 밝혔을 정도다.
 
저자는 동물의 분류부터 시작해 5억 년 전 최초의 척추동물이 출현한 이래 그 진화과정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논증하고 있다. 세포와 조직에서부터 배아의 발달단계, 유전자 분석, 해부학과 고고인류학, 성 선택과 진화 압력, 뇌와 신경회로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말 그대로 방대한 파노라마다. 장구한 동물 진화사에서 얼굴의 생성, 표정의 출현, 그 사회적 의미의 획득에 이르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다. 그리고 그 결론은 "인간의 얼굴은 진화의 산물이며,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요구이자 결과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진화 압력과 사회문화적 필요성이 조응한 '공진화(共進化)'라고 할 수 있다. 
 
궁금해졌다. 동물의 얼굴에서도 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맹수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하는 것쯤은 알아차리겠지만 펭귄(조류)이 까르르 웃고 악어(파충류)가 무서운 눈초리로 째려보는 건 동화의 세계에서나 가능하지 않은가. 더 하등동물인 달팽이나 오징어는 어디부터가 얼굴인지조차 알 수 없다. "입과 한 쌍의 눈이 있는 동물의 머리 앞쪽 면"을 얼굴이라고 한다면, 100만 종이 넘는 동물의 절대다수는 '얼굴 없는 존재'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얼굴을 가진 동물은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과 갑각류와 곤충류를 포함하는 절지동물 두 집단뿐이다. 그중에서도 얼굴 근육은 척추동물 포유류에게만 뚜렷이 나타나는 속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 표정이 특히 발달한 이유가 다음의 네 가지 특징에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턱과 치아의 발달, 얼굴 털의 퇴화, 모유 수유, 얼굴 근육의 발달이라는 것이다. 얼굴 턱은 그렇다 쳐도 모유 수유가 표정이 발달한 이유와 관련이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가.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면, 인류 진화과정에서 표정이 1:1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했고, 그런 상호작용이 집단의 결속력과 구성원의 생존 가능성을 높였으며, 유대가 강해진 사회적 관계망은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더 큰 선택압(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는 외부압력)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사회성이 사회성을 부른다." 공감되는 얘기다.
 
진화론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이렇게 속속 드러나는 인문사회학에서의 과학적 근거는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참 신선하고 색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진 그저 단순한 발달단계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다면 이번엔 뭔가 꽉 채워지는 구체적 논증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과학자들도 완전하게 부정하지 못하는 증거들이 있다는 것은 진화론을 통해 보다 다각도에서 학문적인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말도 되는 것이므로 얼마든지 새로운 학설과 증거들이 나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그것이 곧 통섭이고 소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깊은 겨울에 읽으려 했던 책 한 권의 궁금증을 풀고 보니 한동안 지쳐있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사회성이 사회성을 부르듯, 한동안 사람으로 지친 마음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풀렸다.    
 

<시니어리포터 이영란>

추천하기4
  • 페이스북 공유 트윗터 공유 Google Plus 공유
시니어리포터 이영란 (레드)
나무들 사이로 적요가 내려앉는 지금, 직진 신호등에 눈발이 어깨를 텁니다. 겨울입니다.
Copyright ⓒ 시니어파트너즈 & Yourstage.com 저작권은 시니어파트너즈에게 있습니다.
나도 한마디
이호연 12월7일 오전 6:53
링컨이 말했다는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 속에는 40세 이전까지는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유전자에 의해서 살아왔지만 40 세 이후의 삶은 자신의 모든 삶이 축적된 이력서가 얼굴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영란 필자님께서 리포터 하신 얼굴은 어떻게 인간을 진화시켰는가는 바로 진화와 사회성의 결과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답글쓰기
한미숙 12월6일 오후 8:13
표정이 발달한 이유중에 하나가 '모유수유'와도 관계가 있군요. 사람들의 사회성이 발달할 수록 얼굴도 진화한다는 건가요? 머리를 많이 쓰면 인간의 얼굴은 어떻게 진화할까, 생각하다가 저는 갑자기 이마가 큰 이티가 생각났어요. 울집 상냥이(고양이)얼굴 표정이 셀 수 없이 다양하다는 걸 새삼 봅니다. ^^
답글쓰기
최고
사랑
기쁨
슬픔
응원
놀람
감사
선택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