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사는 조카딸 결혼식에 다녀오다

 
미국 LA에 내 밑에 동생이 이민을 가서 35년째 살고 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그동안 어머니만 한 번 다녀오시고 나는 한 번도 가지를 못 해 이산가족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큰조카 딸이 결혼한다고 해서 일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조카딸이 독일계 청년하고 결혼하기 때문에 그쪽 분들이 뿌리를 중시해서 사위 아버지의 형제들이 멀리에서 모두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형도 꼭 와야 한다고 동생이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모든 결혼식이 서양식으로 이루어지나 보다. 호텔에 좌석 배치가 되고 내 자리가 일 년 전에 정해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번호로 선택하라고 조카딸한테서 연락이 왔었다.
 
일 년 전부터 준비해온 LA에 가는 날짜가 언제 오려나 했는데 오기는 왔다. 11월 10일에 출국하였다. 비행기에서 나는 창 측에 앉았다. 그런데 비수기라서인지 한 자리를 건너뛰어서 앉혔다. 한 자리를 건너서 어떤 백인 여학생이 앉았다. 나야 광주 촌놈이라 조용히 앉아 있는데 내가 리시버를 바닥에 떨어뜨렸더니 그 백인 여학생이 방긋 웃으면서 주워준다. 그래서 서투른 영어로 말을 걸었더니 잘 답해 준다. 자기는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한국에 여행 왔다가 LA를 거쳐 집에 가는 중이란다. 방긋 웃으면서 영어로 답해주어 참 고마웠다. 나중에 사인하나 해달라고 했더니 '카롤리나'라는 사인을 해 준다. 그 귀여운 아르헨티나 여대생의 미소 때문에 LA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내내 기분이 좋았다.
 
우리네 젊은 학생들은 우리 같은 중년들이 말을 걸면 긴장하고 경계하기 일쑤다. 우리 사회가 너무 흉포한 범죄가 많다 보니 젊은 학생들이 어른들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도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풍토가 조성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LA의 팀 블레들리 공항은 좀 오래되고 낡았다. 마중 나온 동생 부부를 만나 차를 타고 동생이 사는 곳까지 고속도로를 한참을 달려 라팔마시에 도착했다. 동생이 사는 집, 조카가 보내주는 카톡에서만 보고 궁금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우리로 말하면 건축업자들이 똑같이 지어 분양한 단독주택인데 이게 미국식 아파트라는 것이다. 바로 입구에 차고가 있고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원도 있다. 라팔마시는 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주택지였다. 라팔마시도 오렌지카운티에 속해 있는데 오렌지카운티가 주택지로 편리하고 좋아서 한인들이 많이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LA 한인회에서 분리 독립해 오렌지카운티 한인회가 따로 있다고 하였다.
 
다음날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조카 결혼식은 오전 11시에 호텔에서 있었다. 사돈댁은 멀리서 온 친척이 많았다. 사돈 형제들이 오스트리아, 캐나다, 하와이에서 먼 거리를 왔는데 지친 기색 없이 결혼식을 즐거워하신다. 동생은 나를 데려다 인사를 시키는데 그 사람들이 영어로 말을 하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NICE TO MEET YOU'만 했다.
 
조카 결혼식은 오전 11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에 끝이 났다. 식사 테이블에 앉았더니 조카들이 내 앞에 아카시아 나뭇잎과 번호가 새겨진 표를 갖다 준다. 그 표는 일 년 전에 신청한 음식을 갖다 주는 인식표이다. 나는 소고기덮밥인가 하는 것으로 신청을 했었는데 참으로 맛도 없다. 중간에 신랑 신부의 가족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신랑 신부의 어렸을 적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손님들이 웃고 즐거워하였다. 결혼식의 하객들이 하루 내내 서로 이야기하며 웃고 떠든다. 서양 사람들은 결혼식을 하나의 사교 파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LA에 며칠 머무르면서 동생의 처가 동서들 집에 초대되어 그쪽 분들의 애로사항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가장 큰 애로가 자식들의 결혼 문제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한국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원하지만 중매쟁이가 없는지라 자녀들이 알아서 배우자감을 데려온다는 것이다. 동생도 한동안 사윗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서양 사람들이라 한국 사람 같은 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너는 한국인이지만 애들은 미국인이다. 애들은 앞으로도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빨리 백인 사회에 동화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제수씨가 참 고마웠다. 머나먼 타국에서 조카들을 잘 키웠다. 그리고 걱정거리도 생기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안 보이는 것이 보인다. 둘째 조카딸이 교통사고로 조금 몸이 안 좋다 하니 걱정이다. 아내는 걱정하는 나를 나무라지만 아내는 조카딸과 피가 안 섞여서 그런가 보다. 처남네 애들은 무척이나 챙긴다. 나는 내 피붙이다. 피붙이의 정이 이런가 보다. 귀여운 조카들이 고통받는 것은 내 고통이다.
 

<시니어리포터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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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조갑환 (뭉게구름)
안녕하세요. 저는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1953년생 남자입니다. 금융기관에 다니다가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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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호연 12월6일 오후 8:23
좋은 경험을 하셨군요, 독일 사람들은 결혼할 때 며느리가 되었건 사위가 되었건 육아일기와 그 집만의 고유한 음식 레시피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훌륭한 민족성이라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햇는데 독일계 조카 사위를 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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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환 12월6일 오후 8:33
네 감사합니다. 조카사위가 독일계인데 참으로 아버지 형제들이 의리가 좋더라구요. 오스트리아,캐나다,화와이에서 모두 왔습니다. 사돈들과 많은 애기도 나누었어야 했는 데 제가 영어를 못하니 '꿀먹은 벙어리'였습니다. 이선생님 건강하시고 새해에는 많은 글을 통해서 이선생님을 뵙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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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숙 12월6일 오후 7:50
울집 신랑도 큰집조카를 챙기는 게, 자식걱정하는 것 만큼이나... 피붙이라는 끌림, 이 글을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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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환 12월6일 오후 8:31
한미숙 선생님 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자주 올려 주세요. 재개발을 소재로 한 글에서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가 50대를 이야기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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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식 12월6일 오후 12:59
축하합니다. 그러게 가족사람이 제일이죠, 제4촌동생들도 미쿡에살고있는데 저도 한번만 다녀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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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환 12월6일 오후 8:29
이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그리 되더라구요. 이선생님의 글도 관심있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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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12월6일 오전 8:23
조카 결혼식 멀리가서 축하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마음이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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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환 12월6일 오후 8:28
이선생님 관심있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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