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이 소설은 작년 여름에 읽은 소설이다. 그런데 더운 여름에 읽어 그런지 책 내용과 내 감정이 섞여 머릿속이 혼탁해지기만 하고 글을 쓰려니 말끔하게 정리가 되질 않았다.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데 생각과 문장이 서로 얽혀들기만 하고 매끄럽게 풀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책장 한켠에 제쳐두고 있었는데 올봄에 우연한 기회로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마저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라 마치 인생에 다시 찾아온 기회처럼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요즘은 동명 소설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영화를 개봉하는 동시에 도서를 함께 출간해 홍보 효과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걸 먼저 접했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글이 주는 세밀한 묘사와 영상이 가져다주는 표현이 각기 다르므로 그러한 장르의 차이에서 오는 공감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또한 내 경우에는 퍽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으로 읽었을 땐 시대적 배경이 좀 더 지배적이어서 두 소년과 바느질 소녀와의 관계도 좀 더 어둡고 비밀스럽게 느껴졌는데 영화를 통해서는 좀 더 밝고 진취적인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책을 통해 많은 장면을 상상하면서 읽은지라 중국 특유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책의 느낌이 좋았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영화 장면보다는 책 속의 글씨가 확연하게 떠오르곤 한다. 
 
 
이 책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2000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프랑스 출판계는 모두 다이 시지에를 주목했고, 미국 유명 출판사들은 소설의 판권을 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또한 영화로 만들어져 2002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소설 속으로 사라진 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마니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문화대혁명. 다이 시지에는 책을 통해 암울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개인의 문제로 포커스를 맞춰 한 편의 영화처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담았다. 소설은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1년을 배경으로 한다. 
 
하방정책(下枋政策, 고위 관료, 당원, 지식인들을 농촌, 공장 노동에 종사하게 한 정책)의 일환으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하늘긴꼬리닭'산이 있는 농촌으로 재교육을 받으러 간 소년 뤄밍(羅明), 마젠링(馬建鈴)과 그곳에서 만난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와의 사랑과 우정을 유머러스하고 낭만적으로 풀었다. 
 
1954년에 태어난 저자 다이 시지에 또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돼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은 체험을 고스란히 소설 속에 살렸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섬세하고 위트 있는 문장들을 통해 자신의 일생을 바꾸어준 서양의 스승들인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등에게 찬사를 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어느 인터뷰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세대의 '책에 대한 동경과 찬사'를 담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 지식인'들은 모두 농촌에서 재교육을 받아야만 했지만, 고등학교에 가보지도 못한 두 소년은 '부모가 부르주아 계급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바이올린이 뭔지도 모르는 첩첩 산골로 보내진다. 이들의 재교육이라는 것은 소위 똥지게를 지고 나르거나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일 등이었다. 마오쩌둥이 "바짓가랑이에 진흙과 소똥이 가득 묻어야 그것을 깨끗함이라 부를 수 있다"고 노동을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문명의 냄새를 풍기는 유일한 물건은 주인공이 가져온 바이올린뿐이었는데 산골 주민들은 생전 처음 보는 그 물건을 놓고 소년들을 겁박하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두려움에 떨던 두 소년은 얼떨결에 무서운 마을 촌장에게 모차르트의 미뉴에트를 '마오쩌둥 주석을 찬양'하는 곡이라고 소개해 단번에 그들로부터 호감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두 가지의 사건이 생긴다. 하나는 마을 안경잡이가 숨겨놓은 가방을 훔치게 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바느질 소녀와의 첫사랑이다. 소똥을 지고 나르고 광산 갱도를 기어 다니며 석탄을 캐는 고된 날들을 보내는 소년들 앞에 한 줄기 빛처럼 바느질 소녀가 등장했으니 사건도 보통 사건이 아니다.
 
 
목욕하는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는 첫 만남부터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에 현혹되지만, 그녀는 글자도 모르고 자명종 시계 안에 닭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계를 몽땅 해체할 정도로 순박하고 무지하다.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그녀의 집엔 모두가 동경하는 재봉틀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본 외부 세계는 장작을 패다가 가끔 보게 되는 비행기가 유일하다.  
 
가방 안엔 금서로 통했던 발자크와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스탕달,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등의 책들이 가득 들어 있고 그들은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두 소년이 읽어준 발자크 소설에 매료된 바느질하는 소녀는 점점 더 바깥세상을 동경하게 되지만 바느질하는 소녀는 뤄밍과의 사랑으로 임신하게 되고 뤄밍의 아버지가 입원해 두 달간 도시로 떠난 사이, 마젠링에게 자신의 임신을 알려 그의 도움으로 낙태한다. 뤄밍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향해 돌진한다면, 마젠링은 그녀를 위해 바이올린을 팔아 그 돈을 소녀에게 건네며 묵묵히 그 사랑을 지켜준다. 
 
 
그러나 바느질하는 소녀는 급기야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새하얀 테니스화를 신고 도시로 떠난다. 떠나는 그녀에게 뤄밍이 "누가 널 변하게 만들었느냐"고 묻자, 소녀는 "발자크"라고 대답하며 그녀의 등 뒤에 모든 것을 남기고 자기만의 길을 간다. 세월이 흘러 프랑스에서 음악가가 된 마젠링은 그 산골 마을이 댐 공사로 잠긴다는 소식에 바느질하는 소녀에게 줄 향수를 사 들고 찾아가 보지만 바느질하는 소녀의 행방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이 기억하는, 또 그들을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물속에 잠길 것이며 바느질하는 소녀가 돌아올 고향 역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시작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시기(1971년)와 맞먹는다. 그리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1년을 마쳤을 때야 끝났으니 그들이 그동안 몸으로 정신적으로 겪었을 진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을 만큼 지난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일생에 필요한 공부를 마치도록 그들은 '해방'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새겼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끔찍한 상흔을 견뎌야 했던 10년. 그러나 신기하게도 소설은 특별한 힐링 과정 없이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소녀의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바느질하는 소녀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는 발자크의 말과 마젠링이 바이올린을 팔아 준 몇 푼의 돈을 가지고 혼란의 도시로 떠났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골 마을에서보다 잘살게 되었을까? 아마도 내가 쉽게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왠지 그녀의 가출이 복잡한 심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때론 당차게 길을 떠나야 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내 걱정과는 달리, 비관적인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상당히 어둡고 무거울 줄 알았는데 소설은 중국인들에게 주입된 문화대혁명에 대한 획일적인 집단 기억에서 벗어나 저자의 새로운 시각과 해석으로 신선하게 그렸다. 더구나 문화대혁명을 겪은 지식인의 상흔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인에 의해 새로운 세계를 자각하고 스스로 용기 있게 그 세계를 찾아 나선 한 소녀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감동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첫 부분, 그러니까 뤄밍과 마젠링이 산골 마을로 들어가는 부분부터 소설은 저자 특유의 위트를 살려 꽤 익살스럽게 묘사된다. 읽을수록 점점 더 손에 든 책을 놓지 않고 내용에 빠져들게 만들고 내용 역시 더 깊은 골짜기로 향해 들어가듯 진지하고 깊어진다. 또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빼어난 영상미를 느낄 수 있다. 산골 마을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묘사는 새벽에 내린 이슬처럼 서정적인 정취를 듬뿍 느끼게 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여과 없이 담아냄으로써 수채화 같은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정서로 읽는 이를 이끌어준다.
 
그 속에서의 젊은이들의 사랑이라니 또한 얼마나 서로가 소중했을까. 어쩌면 뤄밍보다도 마젠링의 사랑이 진심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뤄밍의 사랑이 사춘기의 철없는 사랑이었다면 마젠링의 사랑은 언제나 바느질하는 소녀를 감싸 안는 품 넓은 사랑으로 보인다. 마젠링이 그녀에게 준 양털 모피에 적혔던 글귀를 떠올려 본다. "자유는 위험하고 아픈 것이며 생명과 맞바꿔야 하지만 자유는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영혼을 자유롭게 느끼게 합니다. 자유를 만끽한 영혼은 다른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바람결에 바느질하는 소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와 같지는 않았을지. 오늘 꿈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시니어리포터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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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리포터 이영란 (레드)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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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호연 2018년12월26일
바느질 하는 중국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소설과 영화를 모두 섭렵하셨군요. 말씀하신대로 저의 경우에도 소설이 영홥다 훤씬 더 감흥을 자아냅니다. 한번은 버질 게오르크의 25시를 소살로 읽었는데 영화가 TV에서 상영되기에 맘 먹고 감상하려고 늦은 밤까지 기다려 보았는데, 첫 장면부터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시청을 그만 두고 잠을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시 독서가 훨씬 났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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